도종환 시인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시집 속 "가을 오후, 별 하나, 은은함에 대하여" 세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시를 읽으며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가을 오후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 p20
별 하나
흐린 차 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맨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 p25
은은함에 대하여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강물도 저녁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재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
- p100
함께 보면 좋은 글
시집ㅣ나태주 시 - 그리움 / 내가 너를 / 별 / 꽃
시를 읽고 나서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가을을 느끼는 마음을 도종환 시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진 이 시는 가을이 내 마음속으로도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마음 깊이 느끼게 시를 쓸 수 있을까?'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감사함과 부러움이 함께 들었다.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 시가 내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오듯 마음이 따뜻하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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