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ㅣ류시화 시 - 나무 / 안개 속에 숨다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집 속 "나무, 안개 속에 숨다, 누구든 떠나갈 때는" 세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시를 읽으며 행복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류시화 시 나무

 

 

 

 마음에 담고 싶은 시 

 

나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 p29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 p9

 

 

 

 

 

 

누구든 떠나갈 때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 p52~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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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고 나서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항상 그 자리에 서서 아낌없이 주고 있는 나무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때로는 안개 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어도 그 거리를 느낄 수 없는, 그래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여럿 있어도 번잡하지 않은.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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