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 시인의 시집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내용 중 "경청, 달의 치유, 섬, 푸른 양귀비" 네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시를 읽으며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경청
바다를 물들이는 석양을
누가 가질 수 있습니까?
꽃들을 피게 하는 바람을
누가 가질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우리는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고
저녁 식탁에 부딪치는
수저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존재 전체로 당신을 듣습니다
우리가 영혼으로 읽던 모든 책들과
넘기는 페이지마다
떠오르던 새벽 별빛과
치마를 끌며 사라지던
어둠의 발소리를 듣습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기에
우리는 그 모두입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기에
우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 p56
달의 치유
화해에 대해 누가 말했나
달이 꺾여 둥글어질 때까지
누가 용서에 대해 말했나
은하를 지나 산 위로 별 꼬리 내릴 때
지극한 순결로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혼례의 계단에서 신부가 고백하듯
그 지극함으로 나는
세상의 아픔 위에 손 얹어보네
용서는 내 인생의 신비였고
사랑은 내 심장의 기도이니
이제 나는 치유를 말할 때가 되었네
달은 떠올라 산을 끌어안고
상수리나무 사이 별빛 촘촘한데
맘속을 맴돌던 그 읊조림을
이제 그만 그대 앞에 펼쳐야겠네.
- p57
섬
내 안의 어둠이
내 밖의 사랑과 만나 빛이 되기를
내 안의 파도가
내 밖의 바다와 만나 새가 되기를
내 안의 분노가
내 밖의 거룩함과 만나 용서가 되기를
내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며
기도할 때마다
갈망하는 그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내가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는
그 순간마다 아픔으로부터
많은 것 배우게 하소서
내가 고독함에 시달리는
그 순간마다
묵묵히 외로움 받아들이는
섬으로 있게 하소서.
- p71
푸른 양귀비
내가 질문하면 너는 대답했지
그건 소리가 아니었지만
너는 말하고 나는 듣고 있었어
이 추운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니?
창백한 얼굴 들어 너는 나를 올려보며
푸르고 조그만 입김 불어 대답해왔지
얼른 피고 얼른 지는 게 내 운명이야
다음 날은 바람도 드셌고
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어
너 따라가는 마음 불러
나는 바람에게 물었지
꽃들은 어디 갔니? 푸른 양귀비는?
너무 투명한 것들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니
몇 장의 꽃잎으로 하늘 받든 너는
내게 얼른 피고 얼른 지며
세상 넘는 법을 가르쳐줬지
낙타는 혹을 지고 사막을 넘고
강물은 낮게 흘러 산을 넘는데
혹한의 세상에서 빛나는 것들은
얼른 피고 얼른 지며 스스로를 넘는다
- p110~p111
함께 보면 좋은 글
시를 읽고 나서
"내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며 기도할 때마다 갈망하는 그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내가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는 그 순간마다 아픔으로부터 많은 것 배우게 하소서."
간절하되 갈망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일 때 그 순수한 마음이 하늘에 닿지 않을까. 상처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상처를 안으로 보듬으면 다른 이의 상처까지도 보듬을 수 있는 큰 마음이 된다. 상처는 아프지만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의 흔적을 남긴다.
"너무 투명한 것들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니 몇 장의 꽃잎으로 하늘 받든 너는 내게 얼른 피고 얼른 지며 세상 넘는 법을 가르쳐줬지."
너무 투명하기에 얼른 피고 얼른 지는 꽃잎처럼 저마다 세상을 넘는 법은 다르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순리로 세상을 넘는 지혜를 배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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