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성 작곡가님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시집 중에서 "이등병의 편지 1~3, 첫눈" 네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이등병의 편지 1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열차 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 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 p80~p81
이등병의 편지 2
- 군대 가는 날
12월, 서울역 플랫폼에서
김밥 도시락과 귤 한 봉지를 건네며
그대는 눈물을 꽃씨처럼 뿌렸다
눈물은 이내 얼었고
내 가슴은 뜨겁게 그 눈물을 녹였다
나는 안녕을 이야기했고
열차가 출발하면서 그대의 몸이 흔들렸다
플랫폼이 멀어지기 시작할 때
그대와 나 사이에 눈이 내렸다
그 눈발 속에서 그대는 작은 섬이 되었다
나는 그대의 섬에
푸른 나무 한 그루를 심어 주었다
이제 나무는 어느 날 큰 그늘을 만들고
그 그늘 아래에서 오늘을 이야기할 것이다
내 안의 섬에서
청춘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청춘의 끝에서 알게 될 암호들을
우리 젊은 날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낯선 역으로 떠났다.
- p82~p83
이등병의 편지 3
- 훈련소에서
훈련소의 첫날입니다
딱딱한 마루 위에 누워서
저마다 잠들지 못하는 청춘들이
뒤척입니다
훈련소를 들어서며
입고 왔던 파란 청바지와
어머니가 짜주신 스웨터를 벗고
깨끗하게 빨아 신은 운동화를
짧은 편지와 함께 소포로 보냈습니다
무슨 큰 죄를 진 것처럼 푸른 옷을 입고
모두들 아무 하지 않습니다
나팔 소리가 하늘 높이 울리는 밤
나팔 소리를 따라 고향집을 떠올렸습니다
매일 드나들던 양철 대문을 열면
착한 얼룩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삐걱이는 대문 소리에 "누구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멀리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가까이 할 수 없어
더욱 그리운 것이 있습니다
나팔 소리가 사라진 그날 밤
별들은 더 높이 집을 지었고
길 떠나는 별들에게
소원처럼 편지 한 장 띄웠습니다
어머니 부디 울지 마세요.
- p84~p85
첫눈
간신히 그대를 잊을 무렵
첫눈이 옵니다
연탄난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라디오에서는 첫눈을 축하하는
러브스토리의 '하얀 연인들'이
눈처럼 방 안으로 내려옵니다
이별이 슬픔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곳에 있더라도
첫눈이 내리는 날
그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룰 수 없는 첫사랑은
세상을 다시 보게 합니다
먼 훗날에도
첫 발자국 소리는 아름답게 남습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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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나서
이등병의 편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군대는 가보지 않았지만 젊은 청춘이 집을 떠나서 훈련소로 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외동아들인 우리 오빠 군대 가던 날 풍경도 떠오른다. "외동이라 철없다며 군대 가서 철 들어와야 된다"고 늘 말씀하시던 우리 아버지, 막상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아들을 보며 흘리시던 눈물, 엄마의 사랑 깊은 눈물도 떠오른다.
군대 다녀온 친구가 훈련소 첫날밤 엄마 생각에 눈물 흘렸다고 했던 말도 떠오른다.
낯선 곳에서 가장 외로울 때 떠오르는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아마도 엄마가 아닐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랑으로 함께 하는 존재이기에. 그래서 때로는 소중함을 잊고 있기도 한 존재. 엄마란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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