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의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를 소개합니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산속에서, 해질녘의 노래" 세편의 시를 전해드리니 시와 함께 행복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제목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저자 : 나희덕
출판사 : 창작과 비평사
마음에 담고 싶은 시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 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 p84~p85
산속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 p73
해질녘의 노래
아직은 문을 닫지 마셔요
햇빛이 반짝거려야 할 시간은
조금 더 남아 있구요
새들에게는 못다 부른
노래가 있다고 해요
저 궁창에는 내려야 할
소나기가 떠다니고요
우리의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들이
저 멀리서 흘러오네요
저뭇한 창 밖을 보셔요
혹시 당신의 젊은 날들이
어린 아들이 되어
돌아오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이즈막 지치고 힘든 날들이었지만
아직은 열려 있을 문을 향해서
힘껏 뛰어오고 있을 거예요
잠시만 더 기다리세요
이제 되었다고 한 후에도
열은 더 세어보세요
그리고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들은
아무것도 내쫓지 마셔요
어둠의 한 자락까지 따라 들어온다 해도
문틈에 낀 그 옷자락을 찢지는 마셔요.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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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나서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때로 우리에게서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것들은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늘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잊고 살기 때문 아닐까.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길을 잃었을 때 먼 곳에서 빛나는 불빛은 우리에게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을 준다. 삶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누군가의 한마디, 따뜻한 위로가 삶에서 길을 찾는 불빛이 될 수도 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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