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의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을 소개합니다. 이 시집은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이후로 10년 만에 내놓은 시인의 신작 시집입니다.
제목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저자 : 류시화
출판사 : 수오서재
마음에 담고 싶은 시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 p14~p15
한 사람의 진실
한 사람이 진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이 진실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진실한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진실한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
모두가 거짓을 말해도
세상에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진실
모든 새가 날아와 창가에서 노래해야만
아침이 오는 것은 아니므로
한 마리 새의 지저귐만으로도
눈꺼풀에 얹힌 어둠 밀어낼 수 있으므로
꽃 하나가 봄 전체는 아닐지라도
꽃 하나만큼의 봄일지라도.
- p21
원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둘레에
보이지 않는 원을 그려 가지고 있다
자기만 겨우 들어가는
새둥지 크기의 원을 그린 이도 있고
대양을 품을 만큼
혹등고래의 거대한 원을 그린 이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 들어올
동심원을 그린 이도 있다
다른 원과 만나 어떤 원은 더 커지고
어떤 원은 더 작아진다
부서져서 열리는 원이 있고
부딪쳐서 더 단단해지는 원이 있다
나이와 함께 산처럼 넓어지는 원이 있고
오월붓꽃 하나 들여놓을 데 없이
옹색해지는 원이 있다
영원히 궤도에 붙잡힌 혜성처럼
감옥인 원도 있고
별똥별처럼 자신을 태우며
해방에 이르는 원도 있다
원을 그리는 순간
그 원은 이미 작은 것
저마다 자기 둘레에
원 하나씩 그려 가지고 있다
생을 마치면 마침내 소멸되는 원을.
- p48~p49
함께 보면 좋은 글
시집/위로의 시ㅣ김재진 -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시를 읽고 나서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인생은 자신의 꽃을 안으로 피우고 또 밖으로 피워내는 과정. 겉으로만 화려한 꽃이 아니라 내면이 더 아름다울 때 그 향기가 먼 곳까지 퍼져나갈 것이다. 꽃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차갑게 흔든다면 이제 꽃이 필 때가 다가온 것이다.
"다른 원과 만나 어떤 원은 더 커지고 어떤 원은 더 작아진다. 부서져서 열리는 원이 있고 부딪쳐서 더 단단해지는 원이 있다."
나의 원의 크기는 얼마큼 될까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이와 만나서 다른 이의 세상을 품을 수 있게 나의 원을 키우고 있는지 내 원만 고수해서 더 작아지고 있는지. 누군가와 부딪칠 때마다 내가 조금씩 부서져서 단단한 문이 열리고 있는지 아니면 문을 더 굳게 닫아걸고 있는지 나의 원을 돌아보게 된다.
류시화 시인의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은 한 편의 시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가르침과 고요의 힘이 시안에 녹아 있다. 시를 읽으며 성찰하고 시를 읽으며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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