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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추천 - 그대가 오기 전날 / 나희덕

코스모스피다 2022. 5. 28. 10:00

 

 

 

나희덕 시인의 「그녀에게」 시집 속 "그대가 오기 전날, 찬비 내리고, 다시 십 년 후의 나에게" 세 편의 시를 전해드리고 시와 함께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나희덕 그대가 오기 전날

 

 

 

 마음에 담고 싶은 시 

 

그대가 오기 전날

 

그동안 나에게는 열망하는 바가

얼마나 많았더냐

오랜 줄다리기, 그 줄을 내려놓고

이제 두 손을 털면

하늘마저 가까이 내려와 숨을 내쉰다

 

그러나 나에게는 망설이던 적이

얼마나 많았더냐

진흙탕 속을 걸어가면서도

발목 하나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가

이제 온몸으로 넘어지고 나니

진흙도 나를 받아 감싸는구나

 

열망하면서도 뛰어들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활활한 불길처럼 살아오는 오늘

그대로 하여

열망과 용기를 함께 가지게 되었으니

두렵지 않아라

눈먼 그대를 내 안에 앉히는 일이.

- p49

 

 

 

찬비 내리고

       편지 1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면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 p71

 

 

 

 

 

 

다시, 십 년 후의 나에게

 

십 년 후의 나에게, 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그보다 조금 일찍 내게 닿았다

 

책갈피 같은 나날 속에서 떠올라

오늘이라는 해변에 다다른 유리병 편지

오래도록 잊고 있었지만

줄곧 이곳을 향해 온 편지

 

다행히도 유리병은 깨어지지 않았고

그 속엔 스물다섯의 내가 밀봉되어 있었다

스물다섯 살의 여자가

서른다섯 살의 여자에게 건네는 말

그때의 나는 첫아이를 가진 두려움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한 마리 짐승이 된 것 같아요, 라고

또 하나의 목숨을 제 몸에 기를 때만이

비로소 짐승이 될 수 있는

여자들의 행복과 불행,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 자란 만큼

내 속의 여자들도 자라나

나는 오늘 또 한 통의 긴 편지를 쓴다

 

다시, 십 년 후의 나에게

내 몸에 깃들여 사는 소녀와 처녀와

아줌마와 노파에게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그 늑대 여인들에게

두려움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갈피 같은 나날 속으로,

다시 심연 속으로 던져지는 유리병 편지

누구에게 가닿을지 알 수 없지만

줄곧 어딘가를 향해 있는 이 길고 긴 편지.

- p166~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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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고 나서  

 

"진흙탕 속을 걸어가면서도 발목 하나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가 이제 온몸으로 넘어지고 나니 진흙도 나를 받아 감싸는구나"

 

때 묻지 않으려고 움츠리고 조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가까이 온다. 피하려는 그 마음이 오히려 더 강하게 그것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오히려 받아들일 때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성숙시키고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나희덕 시인의 시를 읽으며 사랑과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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