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를 소개합니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라일락꽃, 풍경" 세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제목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저자 : 도종환
출판사 : 창비
마음에 담고 싶은 시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 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 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p10~p11
라일락꽃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 p56
풍경
이름 없는 언덕에 기대어 한 세월 살았네
한 해에 절반쯤은 황량한 풍경과 살았네
꽃은 왔다가 순식간에 가버리고
특별할 게 없는 날이 오래 곁에 있었네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풍경을 견딜 수 있었을까
특별하지 않은 세월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많은 들꽃 중에 한 송이 꽃일 뿐인
너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 p23
함께 보면 좋은 글
한용운 - 님의 침묵 / 꽃이 먼저 알아 / 복종 / 나룻배와 행인
시를 읽고 나서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풍경을 견딜 수 있었을까. 특별하지 않은 세월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많은 들꽃 중에 한 송이 꽃일 뿐인 너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하는 힘이 사랑이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 특별한 누군가가 된다.
사랑은 세상을 빛나게 만들고
사랑이 있어 그래도 세상은 살맛나는 것이다.
지금 내 삶이 팍팍하다 느껴진다면 사랑이 필요할 때다.
화려하지 않아도 잔잔하게 사랑이 스며들면
삶은 다시 생기를 띠고 초록으로 피어나는 잎처럼 세상은 다시 푸르를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인생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길지 않은 시 한 편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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