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소개합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 장, 우물" 세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제목 : 「외롭고 높고 쓸쓸한」
저자 : 안도현
출판사 : 문학동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너에게 묻는다
연탄제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p11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구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p12~p13
우물
고여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가끔씩 두레박이 내려온다고 해서
다투어 계층상승을 꿈꾸는 졸부들은
절대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
누군가 목이 말라서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
철철 피 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은
고여 있어도 어느 틈엔가 새 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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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나서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상처받을까 두려워 마음을 다 주지 못하고 어느 정도 내가 서 있을 여분을 남겨둔다. 마음을 다 주고 나면 혹시나 밀려올지 모르는 쓸쓸함 때문에.
온몸을 다 태워서 누군가의 삶을 따스하게 만드는 연탄처럼 사랑은 힘듦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음을 다해서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힘들수록 사랑은 더 빛이 나고, 추울수록 누군가를 더욱 따뜻하게 데울 수 있기에.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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