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시인 101인 선집 조병화 님의 시집 속 "가을, 고요한 사랑,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어느 노인의 유언" 네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시를 읽으며 행복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가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하며
먼 곳을 돌아 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 p137
고요한 사랑
나의 기도로는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신이 있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하늘이 있습니다
나의 사랑으로는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당신이 있습니다
아, 나의 세월로는 다는 갈 수 없는 곳에
나의 사랑이 있습니다.
- p151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의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을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 p58~p59
어느 노인의 유언
- 소년에게
한 노인이,
사람이 사는 마을을 벗어난 길가
큰 고목나무 그늘에서
소년들에게 이야길 하고 있었습니다
애들아, 잘 들어 두어라
이제 할아버지는 사람이 사는 마을을 떠나
끝없는 저 넓은 하늘 나라로
보이지 않는 내 길을
스스로 찾아 더듬어서
긴 내 여행을 이어서 떠나련다
너희들도 어느새 할아버지 나이가 되면
할아버지처럼, 하나, 둘, 소리 없이
사람의 마을을 떠나
저 하늘나라로 다시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서
긴 여행을 하게 되려니
그때까지,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서
너의 사람을 부지런히 살아야 하느니라
아무런 후회 없이 떠날 수 있게
자, 이제 떠날 시간이 되는 것 같다
그럼 몸조심해라, 흔들리지 말라, 지치지 말라
다시 하늘 나라 여행길에서 만날 때까지
이 고목처럼.
- p194~p195
함께 보면 좋은 글
시를 읽고 나서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다 해도 사랑하고 믿을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결말이 이별이라 해도 지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온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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