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인의 시집 「찬란」 속 "삼월,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두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시를 읽으며 편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삼월
따뜻하다고 해야 할 말을
따갑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한계령을 넘었지요
높다라고 하는 말을
넓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한계령에 있었지요
깊이 목을 찔린 사람처럼
언제 한번 허물없이 그의 말에
깊이 찔릴 수 있을까 생각했지요
첫눈이 나무의 아래를 덮고
그 눈 위로 나무의 잎들이 내려앉고
다시 그 위로 흰 눈이 덮여
그 위로 하얀 새의 발자국이 돋고
덮이면서도 지우지 않으려 애쓰는
말이며 손등이며 흉터
밖에는 또다시 눈이 오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지요
밖에는 천국이 지나가며 말을 거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눈 속에 파묻히는 줄도 모르고
당신이 모르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지요.
- p56~p57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 p46~p47
함께 보면 좋은 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여자 - 김춘수 시집/겨울 시
시를 읽고 나서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시를 읽으며 그림처럼 장면이 그려진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무심히 꽃을 두고 나오는 시인과 그런 시인을 불러 꽃을 전하려는 할머니!
두 사람 사이에 이름 모를 따스함이 느껴진다.
때로는 무심한듯 누군가를 위해 선의를 베풀고 싶은 날이 있다. 시인의 섬세한 마음과 무심한 선의가 시와 함께 잔잔하게 마음에 들어온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 하트 부탁드려요~♡
'시집 추천 > 위로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물의 중력 / 사랑은 - 좋은 시 추천 (23) | 2022.06.24 |
---|---|
시 추천 - 유치환 행복 (16) | 2022.03.06 |
시집/위로 시 - 이병률 새날/찬란 (38) | 2022.02.26 |
도종환 시 추천 - 별을 향한 변명/해장국/화 (43) | 2022.02.09 |
위로 시집 추천 - 유치환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 (40) | 2022.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