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추천/인생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여자 - 김춘수 시집/겨울 시

코스모스피다 2021. 12. 11. 10:00

 

 

 

김춘수 시인의 「김춘수 시전집」 중에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여자, 산장, 저승과 이승" 네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마음에 담고 싶은 책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p224

 

 

 

여자

 

푸르고 푸른 줄 알았단다

푸르고 푸른 것이 그치면

복사꽃 외얏꽃 냉이꽃

향기로운 꽃밭인 줄 알았단다

바다!

바다!

 

구슬 같은 눈물이 희기 시작한다

두 손을 흔들어 사모친 이름을 불러보면

물결이 더욱 하늘처럼 영롱하다

물결은 가슴 밖을 하늘처럼 넘쳐흐른다

 

바람이 흔들면

거문고 일곱 줄 은실이 하늘마저 울린다.

- p50

 

 

 

산장

 

구름이 날아와

유리창에서 부서지면

바람은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때론

멧새도 날아와 울어 주고

볕살 바른 언덕에는 왼종일

빨간 꽃도 피곤하였다

 

구름과 바람 꽃과 새

이들은 고운 인연만이 흘렀고

일월日月에는 아무런 괴변도 없었는데

담장이 덩굴랑 부덕부덕 기어오르고

밤만 새면 넘어보는 쪽빛 하늘이여

느티나무 그늘에서 움메에

송아지가 부른다.

- p53

 

 

 

 

 

저승과 이승

- 사별

 

죽음 어떤 모양으로 왔던가?

눈을 감으며

한 손을 허공에로 젓는

그런 모양으로

아이들의 장난처럼 왔지

 

아내는 저승으로 가서

나를 뭐라고 할까?

아버지

어머니

아내는 뭐라고 합디까?

아내의 목소리 들으셨나요?

 

가는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잊어야 하리

그것이 이승의 법도로다

아내여 이제야 마음 놓고

그대 위하여

내 거문고는 가락을 타누나

도화빛으로 그대는 피어나고

강물에 서린 보얀 안개

그대 마음 더욱더 내 것이로다

용서하라

 

그러나 할 수 없지

그대 또한 내 운명의 일부

내 가락은 언제나

(그대 생전에도)

저승을 드나들었지

저승은 정다운 곳

그대 사는 곳

이제는 무엇이 아쉬우리

그대 저승에서 비妃가 되소서.

- p31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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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고 나서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하얀 눈이 내리는 하늘과 마을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눈이 내린다는 표현은 눈에 빛나는 생명을 부어주는 것 같다. 새하얀 마을이 포근하게 떠오른다.

 

 

 

 

 

"구름이 날아와 유리창에서 부서지면 바람은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때론 멧새도 날아와 울어 주고 볕살 바른 언덕에는 왼종일 빨간 꽃도 피곤하였다."

 

창문에 비친 구름과 지나가는 바람이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산장의 전경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몇 번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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