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인의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시집 중 "꿈꾸는 당신, 기적, 귀향" 세 편의 시를 전해드리니 시를 읽으며 행복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꿈꾸는 당신
내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당신은 어디서 구해 빈 터를 채우는가
내가 덮어주지 못한 곳을
당신은 어떻게 탄탄히 메워
떨리는 오한을 이겨내는가
헤매며 한정 없이 찾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에 있기에
당신은 돌아눕고 돌아눕고 하는가
어느 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늪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새벽 침상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 p28~p29
기적
추운 밤 참아낸 여명을 지켜보다
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들으면
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지난날 나를 지켜준 마지막 별자리
환해오는 하늘 향해 먼 길 떠날 때
누구는 하고 싶었던 말 다 하고 가리
또 보세, 그래, 이런 거야, 잠시 만나고-
길든 개울물 소리 흐려지는 방향에서
안개의 혼들이 기지개 켜며 깨어나고
작고 여린 무지개 몇 개씩 골라
이 아침의 두 손을 씻어주고 있다.
- p9
귀향
1
돌아왔구나, 하고 친구가 말했다
오래도록 나가서 떠돌며 살더니
이 일 저 일 털어내고 맨손으로
돌아왔구나, 하고 나를 잡아준다
그런데 나는 정말 돌아온 것일까
나 살던 동네도 모습 찾기 힘들고
알던 사람들 목소리 들리지 않는다
2
그날은 저녁부터 밤새 비가 내렸다
소름 끼치게 혼자 있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체질인 것을 알았다
어떻게 남보다 많이 젖지도 않고
속내의 나를 모두 보일 수 있으랴
그날은 떠난 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숨 쉬는
신선하고 정결한 단어를 찾으려고
방향도 정하지 못한 채 낚싯줄을 던졌다.
3
알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너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며칠 왠지 밤잠을 설쳤을 뿐이다
얼굴과 머리는 늙어 낙엽으로 날리지만
한 평 침대에 누운 저 꽃 잠 깨기 전에
재갈 물린 세월아,
모두 잘 가거라, 잘 가거라.
- p51~p51
함께 보면 좋은 글
시를 읽고 나서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를 온전히 다 채워줄 수 없다. 남은 빈 가슴은 스스로 채워가는 것이 인생.
"추운 밤 참아낸 여명을 지켜보다 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들으면 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는 맞이하는 하루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캄캄한 밤이 있어 쉴 수 있고 밤을 지나 밝아오는 새벽이 있기에 우리는 또 밝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루가 지나가는 순간순간이 너무나 오묘하고 감사하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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