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시집 속 "여행은 혼자 떠나라, 첫 마음의 길, 그 겨울의 시" 세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여행은 혼자 떠나라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갈 때
달려가도 멈춰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함께 가도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둘이 손잡고 오라
낯선 길에서 기다려온 또 다른 나를 만나
돌아올 땐 둘이서 손잡고 오라.
- p176
첫마음의 길
첫 마음의 길을 따라
한결같이 걸어온 겨울 정오
돌아보니 고비마다 굽은 길이네
한결같은 마음은 없어라
시공을 초월한 곧은 마음은 없어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늘 달라져온
새로와진 첫 마음이 있을 뿐
변화하는 세상을 거슬러 오르며
상처마다 꽃이 피고
눈물마다 별이 뜨는
굽이굽이 한결같은 첫 마음이 있을 뿐
- p126
그 겨울의 시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 p210
함께 보면 좋은 글
시를 읽고 나서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날이 추워 오갈 곳 없는 사람을 걱정하고, 산속에 동물들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 아마도 시인은 이런 할머니의 따뜻한 품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세상을 걱정하고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도 어린 시절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준다. 할머니의 마음은 시인에게로 시인의 마음은 그 자식에게도 그렇게 흐르지 않았을까.
추운 겨울 할머니의 따뜻한 노래가 시가 되어 내 귓가에도 들리는 것 같다. 올 겨울도 추운 날이 많은데 모두 따뜻한 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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