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시집 「그리운 여우」 중에서 "제비꽃 편지, 나의 희망" 두 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시를 읽으며 따뜻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시
제비꽃 편지
제비꽃이 하도 예쁘게 피었기에
화분에 담아 한번 키워보려고 했지요
뿌리가 아프지 않게
조심조심 삽으로 떠다가
물도 듬뿍 주고 창틀에 놓았지요
그 가는 허리로 버티기 힘들었을까요
세상이 무거워서요
한 시간이 못되어 시드는 것이었지요
나는 금세 실망하고 말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없었어요
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지요
그래서
좋다
시들어라, 하고 그대로 두었지요.
- p22
나의 희망
학교 관사 옆 공터가 심심하지 않게
거기에다 호박을 심자 했더니
선생님,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심나요?
깔깔대더니
어느새 호미와 삽과 괭이가 모이고,
비료가 한줌씩 오고,
쇠똥 거름도 한 리어카 달려왔지
사실 이런 일이 생전 처음인 나는
구덩이마다 호박씨 서너 개씩을
꼭꼭 심으며
이것들이 땅속에서
부디 숨결을 열어주기를
그리하여 이 세상하고
다시 관계를 맺어주기를
얼마나 조마조마 기다렸는지 몰라
떡잎이 삼삼오오 오종종 돋은 날
나는 고것들이 햇볕의 끈을
부디 놓치지 않기를 빌었지
덩굴손을 가지게 되면
자기 아닌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손 뻗어 툭,
건드려보는 재미로 살아가기를
수업 없는 빈 시간에 둘러보고
물을 주며 또 빌고는 했지
사는 게 뭐 별거 있겠어
자꾸 물을 주다 보면
호박꽃은 필 거야
그러면 어느 날 아침 한때
나, 호박꽃 주위에서 붕붕거리는
한 마리 벌이 될지도 몰라.
- p42~p43
함께 보면 좋은 글
책을 읽고 나서
"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지요."
꽃이 피면 시간이 지나 시들고 지는 것이 꽃이 가진 자연이 순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따뜻한 봄을 만나면 씨앗이 움트고 꽃은 다시 핀다.
사람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 인생이 꽃처럼 환하게 피면 시들고 질 때도 있다. 시들고 지는 것은 새로운 꽃을 다시 피우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 순리를 알고 사는 자는 매 순간이 감사하지 않을까.
안도현 시인의 시는 쉬운 말로 다가와 깊은 울림을 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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